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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충청도

[충주] 탄금대

by Alex330 2017. 2. 17.


탄금대는 충주시 근처에 있는 대문산(108m)의 정상을 지칭한다.

산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다.

절벽을 따라 강물이 휘감아도는 탄금대는 남한강과 너른 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줄기의 모습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 위치한 열두대에서 가장 잘 보이며,

정상부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탄금정이 있고, 동쪽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솟아 있으며

아래로는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신라 진흥왕 때인 552년 악성(樂聖)으로 불린 우륵(于勒)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반기며 국원(충주)에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신라의 청년인 법지, 계곡, 만덕을 선발해 악(樂)을 배우게 하고

우륵을 보좌하도록 했다. 이런 연유로 우륵은 만년에 멸망한 가야국을 떠나 충주에 우거했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은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데,

우륵은 이곳의 풍치를 탐미하여 산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이곳이 바로 우륵이 금(琴)을 탄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탄금대(彈琴臺)’다.







가야금은 우리의 고유한 악기로 본래 대가야연맹을 상징하며 가야인의 천문의식을 담고 있다.

가야금은 위가 둥글고 아래가 평평한데 이것은 천원지방의 천문관을 나타내며, 12개의 줄은 1년 12달을 상징한다.


탄금대 북쪽 절벽에는 열두대가 위치하고 있는데 열두대의 지명에 관한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바위의 층계가 12개이기 때문에 열두대라 하기도 하고, 절벽 아래 물이 12번 돌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교전 중 달구어진 화살을 식히느라 12번을 오르내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열두대 아래는 깊은 소가 있는데 이를 양진명소라 한는데이곳에 뱃길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선주, 선박 상인들은 양진명소에서 안전과 번영을 빌었다고 한다.



탄금대교와 평택제천 고속도로





탄금대 공원 안에는 대흥사가 있는데 1956년 승려 오법우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그 옆에는 충정공 신립장군의 순절비가 있다.


탄금대는 임진왜란의 참혹한 역사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도순변사였던 신립(申砬)은 8,0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탄금대에서 격전을 치렀다.


그는 배수진을 치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왜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결국 패하고 말았다.

신립은 이곳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투신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대흥사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 창건주 미상의 용흥사가 있었던 곳으로,

거란족의 침략을 당하여 사찰이 소실되었던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1956년 3월 승려 오법우가 이 터에다가 대흥사를 창건하였다.

1968년 10월에 화재로 인하여 대웅전이 소실되자 1969년 5월에 대웅전을 재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대흥사가 자리 잡은 산을 대문산이라고 불러왔으나,

가야국의 악성 우륵이 이곳에 와서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하여 이후로부터 충주 탄금대라고 불렸다고 한다.











충주의 시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탄금대 공원은 느릿느릿 산책하기에 딱 맞는 곳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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