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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경상도

[영주] 소수서원

by Alex330 2016. 8. 19.




소수서원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 서원이며,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사액서원은 사설기관인 서원의 역할이 국가의 정책에 연결되면서 국가의 공인을 받아 서원명 현판(懸板)과 노비·서적 등을 하사받았던 서원이다.


소수서원 담장 너머의 길쭉한 사각형 연못 탁청지


탁청지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겸암 류운룡이 풍기군수로 재임할 때 조성한 연못이다.


소수서원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豊基郡守)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 이곳 출신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祠廟)를 설립하였고,


 1543년 유생 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1546년(명종 1)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안현(安玹)은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 방책을 보완하는데 주력하였다.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과 국가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1550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되었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文成公廟)·명륜당(明倫堂)·일신재(日新齋)·직방재(直方齋)·영정각(影幀閣)·전사청(典祀廳)·지락재(至樂齋)·학구재(學求齋)·서장각(書藏閣)·경렴정(景濂亭)과 탁연지(濯硯池)·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등이 있다.


서원의 배치는 강학(講學)의 중심인 명륜당이 동향, 배향의 중심 공간인 사당(祠堂)이 남향이며,


기타 전각들은 자유롭게 배치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는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스승의 처소인 직방재, 일신재(直方齋, 日新齋)의 동북쪽에 ㄱ자로 배치되었다.




강학당은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이 1543년 군학사를 옮겨온 것이다.


서원의 양대 기능 중 학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이 강당에서 길러낸 원생이 4천여 명에 달하며, 대부분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생이 망라되어 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강학당의 뒤쪽으로 일신재, 직방재와 나란히 배치된 장서각(藏書閣)은 서원의 서적과 서원에서 출판한 판각들을 보관했던 곳으로 오늘날의 대학 도서관이다.


영정각은 서원내 중요한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75년 신축한 목조건축물이다.


강학당의 북쪽에서 강학당을 바라보고 있는 직방재(直方齋)와 일신재(日新齋)는 원장, 교수 및 유사(有司)들의 집무실 겸 숙소로


각각 독립된 건물이 아닌 연속된 한 채로 이루어졌으며 편액으로 구분하고 있다.


경렴정(景濂亭)은 서원으로 들어서기 바로 전에 있는 정자 건물로 유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던 공간이다.


주세붕 선생이 백운동서원을 건립하면서 이 정자를 지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정자 중의 하나이다.

서원 경내로 들어서기 전 죽계천의 건너편에는 운치 있는 자태의 소나무에 둘러싸인 아담한 정자가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경자바위 윗부분에 터를 닦아 대를 쌓고


 손수 소나무, 대나무, 잣나무를 심고 ‘취한대(翠寒臺)’라 이름 한 것을 본 받아 1986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취한대’란 이름은 푸른 연화산의 산 기운과 맑은 죽계천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옛 시 송취한계(松翠寒溪)의 비취 ‘翠’와 차가울 ‘寒’자에서 따온 것이다.


죽계수를 굽어보며 홀로 앉은 취한대는 산뜻하고 깨끗한 풍취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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